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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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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설칼럼] '쓰시마-아리랑 축제'- 국제신문 (2004.8.9)
등록일 2004. 08. 13 조회수 1,816
일본에서의 '아리랑 축제'! 엊그제이틀 동안 쓰시마 이즈하라항에선 '쓰시마-아리랑 축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조선통신사 행렬' 재연이었다. 에도(江戶)시대 200년간 12 차례나 일본을 찾았던 조선통신사 행렬을 옛 모습 그대로 되살렸다. 조선 최고 관료와 학자, 예술인, 악대와 무인(경호원), 통역관 등 400~200년 전 그 행렬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일본의 에게해'로 불리는 우시마도(牛窓) 등 60여 중간 기착지 곳곳에서 재연되고 있다. 시모노세키의 바칸마쓰리, 후쿠오카의 아시안먼스, 오사카의 미도스지 퍼레이드 등에서도 행렬 재연이나 조선통신사 특별무대를 마련한다. 조선통신사가 시공을 초월하여 부활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규모와 열기로는 '쓰시마-아리랑 축제'가 단연코 으뜸이다.

일본 땅에서 웬 아리랑 축제인가? 이런 의문이 없을 수 없다. 한국의 상징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아리랑이다. 1964년 시작된 이 축제의 원래 명칭은 '이즈하라 미나토마쓰리(항구축제)'이다. 지난 80년부터 조선통신사 행렬 재연을 해왔고, 조선통신사가 축제의 중심 행사로 부각이 되면서 88년부터 부제(副題)로 '쓰시마-아리랑 축제'로 불린다. 한국과의 연대의식을 고려한 결과이리라.

'이즈하라 미나토마쓰리'를 '쓰시마-아리랑 축제'로 부르지만 아무도 거부감을 갖지는 않는다. 이 축제는 쓰시마의 번영을 가져온 19~21대 영주 소 요시토시, 요시나리, 요시자네의 역사적 업적을 기리고자 마련됐었다. 그런데 이들 세 영주가 조선통신사 초청 등 조선과의 교역기반을 통해 재정적으로 안정을 취한 뒤 수로정비 등 부흥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때문이다.

'쓰시마-아리랑 축제'는 신명 위주의 일반 지역축제와는 성격이 다른 측면이 있다. 메인 행사인 조선통신사 행렬을 통하여 한·일 선린우호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축제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연하려는 것에 역점이 모아진다. '아리랑 축제'라는 이름 그대로 한국, 특히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이 주요 공연과 전시행사를 도맡아 하는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쓰시마-아리랑 축제'를 현지에서 직접 참관하는 동안 쓰시마인지 부산인지 그 구분이 헷갈릴 정도였다. 사실 쓰시마는 부산과 너무 가깝다보니 한국이 아닌 일본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쓰시마와 부산의 거리는 49.5㎞로 대마도와 일본 규슈(九州) 147㎞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쓰시마 최북단 한국전망대에선 부산의 야경이 선명하게 보이고, 휴대폰 통화가 바로 된다.

'쓰시마-아리랑 축제'는 한·일 양국이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류(誠信交流)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문화교류를 지향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아리랑 축제를 지켜보는 동안 미묘한 느낌이 앞서는 것은 어째서일까? 뱃길로는 너무나 먼 세도나이카이의 우시마도 등지 행사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쓰시마가 일본보다 한국, 부산과 너무 가까이 있는 때문만도 아니었다.

"대마도는 본디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우리 땅이다"-'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다. 또 '해동지도'에는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은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對馬)와 호남의 탐라(耽羅)를 양발로 삼는다"고 명기돼 있다.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은 병선 227척에 1만7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했다. 1436년 쓰시마의 도주는 쓰시마를 조선의 한 고을로 인정해달라는 상소문을 올리기까지 했으니...

요즘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와 관련한 과거사 왜곡 등을 거침없이 확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중·일 세 나라 사이에 '총칼 없는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 극우단체가 독도 상륙을 시도하자 우리 시민단체는 쓰시마 상륙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쓰시마ㅡ아리랑 축제'의 조선통신사 행렬 재연을 눈여겨 보았으면 한다. 조선통신사는 성신교류의 의미를 배우라고 외친다. 한·중·일 세 나라는 '역사전쟁'에 앞서 이 교훈을 먼저 새겨야 하겠다.


/논설주간 hsc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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