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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마도는 우리 땅인가]신라·백제·고구려 이름 딴 지명 존재-경상일보(2005.11.25)
등록일 2005. 11. 28 조회수 2,036
② 우리 민족의 흔적 곳곳에 남아


충숙공 이예 선생의 후손들이 대마도주와의 정략결혼에 희생됐던 덕혜옹주의 애환이 담긴 이왕조종가 결혼봉축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1949년 1월 8일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일본에 대한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한편 국회에서도 앞으로 열릴 대일강화회담에서 대마도 반환을 관철시킬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은 이에 강력 항의하는 동시 연합군최고사령부(SCAP)의 맥아더 사령관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를 막아주기를 요청했다. 맥아더 사령부도 대마도 영유권 주장을 당시 동아시아의 미국 구도를 방해하는 요소로 받아들여 오히려 유감을 표시했다. 이에따라 대마도 영유권 문제는 그 이상 공식문서나 외교채널을 통해 정식 제기되지 않았다.

반면 일본 측의 대응은 매우 신속하고 신중했다. 대마도 반환요구에 대한 반대 자료 작성을 위해 외무성 산하에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학회에서도 단호하게 나섰다.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등 관련 5대 학회가 앞장서서 2년간 대마도 관련사항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통해 한국 측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논문을 잇달아 발표했다.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우리조상들이 일본으로 건너 갈 때 딛고 가는 징검다리였다. 지금부터 15만 년 전 아득한 먼 태고시절에는 대마도가 한반도에 붙어 있다가 대한해협이 함몰되면서 섬이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 섬의 군데군데에는 아직도 우리식 지명과 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우리 민족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섬이라 할 수 있다.

조선조의 수많은 사신이 왕래했던 길목이었을 뿐 아니라 특히 임진왜란 전후 조선과 왜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을 적에는 양국이 긴밀한 접촉을 거듭했던 외교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섬 곳곳에 통신사의 흔적은 물론 구한말 충의지사 최익현(崔益鉉)선생과 대마도주와의 정략결혼에 희생되었던 덕혜옹주(德惠翁主)의 애환도 남아 있다.

이와 같은 밀접한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듯 현재 대마도에는 매년 8월에 소위 '아리랑 축제'를 열고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다. 또한 상·중·하 대마에 각각 고등학교가 하나씩 있는데 학교마다 사물놀이 등 한국문화를 익히면서 일본 쪽 보다는 오히려 한국 쪽 뿌리에 접근하려 한다. 이들에게 졸업 후 진학을 물으면 서슴지 않고 대부분 부산의 대학을 선호한다고 한다.

대마도에는 많은 지명들이 신라와 고구려에서 유래되고 있다.

이즈하라 동쪽 산 이름은 시라기야먀(白木山=新羅山)이며, 상도(上島)의 와니우라(鰐浦) 포구에서 한반도를 마주보고 있는 산은 고마산(高麗山)이다. 이것은 삼국시대 신라, 고구려, 백제가 각각 대마도에 그들의 읍락(邑落)을 형성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신라는 하도(下島)의 게치(鷄知)와 이즈하라에, 고구려는 상도의 닌이(仁位)와 와니우라(鰐浦)에, 백제는 하도의 스사(須佐)와 깊은 관련이 있고 이에 따라 유적과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밖에도 대마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불경, 불상, 범종, 금고(金鼓), 거울 등이 지금까지 유물로 남아 있다.

또한 상도 북부의 시다루(志多留)에는 가라쿠라(神座)라는 성지(聖地)가 있는데 이는 가야인(伽倻人)들이 정착했던 전설의 고장이다. 전설은 오늘날 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 줄거리는 이러하다.

'아득한 옛날 시다루 해변에 커다란 항아리가 떠내려 왔다. 이 항아리는 '나는 가라(加羅)에서 왔다. 가라가 보이는 장소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항아리에서 들려오는 말대로 사토노카미야마 위에 안치시켜 놓았다. 그랬더니 바다에서 밀려오는 만조 때는 그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차고 간조 때는 항아리에 물이 없어졌다.'

이곳 주민들은 가야인을 천손(天孫)으로 숭배한 나머지 항아리가 평온과 풍요를 안겨주는 신(神)으로 믿고 있다. 시다루 인근 마을 우나츠라(女連)에도 고대 가락(駕落)의 왕녀가 통나무배를 타고 진귀한 보물을 가져왔다는 전설이 있다. 이 밖에 가야인이 대마도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흔적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일본 신화에 나오는 개국 신들이 가야에서 대마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건너갔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대마도에서 쓰이는 일상용어 가운데 우리말이 상당히 섞여 있다. 예를 들면 고구마를 일본말로 '사츠마이모'라고 하는데 대마도 사람은 이를 '고우코오'(孝行)라고 하므로 고구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고구마는 알고 보면 대마도에서 들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대마도간에는 동식물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17세기경 대마도가 수입해간 고려 꿩은 일본 꿩보다 크고 목에 흰 띠가 있는 수컷이 특징이며 지금도 섬 여러 곳에 고려 꿩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유종현(한양대 겸임교수)
[2005.11.24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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