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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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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익현선생 100주기 日서 진혼제-(동아일보 2006.2.27)
등록일 2006. 03. 02 조회수 1,640

일본 쓰시마(對馬) 섬에 끌려가 단식으로 저항하다 순국한 항일 의병장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사진) 선생의 100주기를 맞아 진혼제가 현지에서 열렸다.

울산 울주문화원 주최로 쓰시마 슈젠(修善)사 경내 선생의 순국비 앞에서 열린 이날 진혼제에는 이두철(李斗哲) 울주문화원장 등 관계자 30명이 참석했다.

진혼제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73호 ‘탈춤 가산오광대’ 이수자인 손옥희 씨가 최강호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창을 부르며 면암 선생의 강직함을 기렸다. 또 일본에서 주로 활약하고 있는 무용가 정명자 씨가 진혼무로 선생의 넋을 달랬다.

제상에는 일본 음식을 거부하며 단식했던 선생의 항일정신을 기려 한국에서 가져간 밤 대추 쌀 조기 등 10가지 음식이 올려졌다.

이 원장은 “면암 선생은 한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쓰시마에서도 그의 높은 뜻을 기리는 사람이 많다”며 “울주문화원은 쓰시마 섬내 유적지 탐방과 진혼제 지속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곧은 선비였던 면암은 1895년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지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면암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일본으로부터의 차관(借款)금지와 친일 매국노 처벌 등을 고종황제에게 상소했다가 두 차례나 일본 헌병에 압송됐다.

또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하고 망국 조약에 참여한 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며 8도에 포고문을 내 항일투쟁을 독려했다. 1906년 74세의 고령으로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400여 명을 이끌고 순창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붙잡혀 쓰시마 섬으로 끌려갔다.

쓰시마=연합뉴스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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