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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0여년 전 조선통신사 '한일 우호 교류' 길을 열다-경북일보(2010.9.1)
등록일 2010. 09. 03 조회수 2,330
대마도에 남아 있는 선조들의 발자취(상)


<반쇼인 사찰 >

◆조선통신사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가 바로 조선통신사다.

조선과 일본의 교린관계가 성립된 것은 1404년, 태종 4년때부터다.

하지만 왜구의 남해안 지역 약탈 등으로 조선은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대대적으로 정벌했다.

정벌은 조선의 대승으로 끝나고 왜구의 남해안 침범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1607년부터 조선통신사들이 12차례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처음 밟는 일본 땅이었다.

이때 조선과 일본은 외교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은 통신사를, 막부장군은 일본국 왕사를 각각 파견했다.

임진왜란 이전의 경우 조선통신사는 주로 왜구들의 조선 노략질을 금지하도록 요청하는 임무가 주 였으며,임진왜란 이후에는 강화와 포로석방, 일본국정을 탐색하거나 일본국 축하 사절 임무가 주가 되었다.

조선통신사는 수도인 한양을 출발해 부산까지는 육로로, 부산에서부터 대마도까지는 대마도주의 안내로 해로를 이용해 대마도를 거쳐 본토로 향했다.


<통신사비>

그 결과 대마도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많은 유적 및 기념비가 현존하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여정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 본토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마도를 거쳐야 했으며, 대마도 남쪽 오후나에(현 이즈하라항 옆) 선착장은 일본 본토로 가는 첫 관문이었다.

이 선착장은 21대 대마도주 요시자네가 만든 선착장으로 조선통신사가 대마도 북쪽으로 들어와 이곳에서 배를 갈아타고 일본 본토로 향했다.

현재는 그 규모가 다소 축소된 듯 보이나 과거 선착장의 모습과 둑을 쌓을 당시 축조된 돌들은 원형 그대로 보존중이다.

또한 정문, 창고, 번주가 휴식을 취했던 건물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후나에를 거친 통신사 일행은 20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나리가 창건한 반쇼인 사찰을 참배했다.

20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나리가 아버지인 소오 요시토시를 위해 창건한 사찰인 반쇼인은 역대 대마도주들의 묘석이 줄지어 있는 공동묘지와 비슷하다.

소오 요시토시는 임진왜란 후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한 인물로 조선통신사 초청을 성사시킨 인물로 조선과의 평화를 최우선시하라는 유언이 유명하다.

그의 노력 때문인지 조선의 통신사들도 대마도에 도착하면 먼저 이곳에 참배했으며 조선왕실에서는 삼구족을 하사했다.

삼구족은 향로와 화병, 촉대로 제사에 쓰이는 물건이며 현재 본당 오른쪽에 전시돼 있다.

반쇼인은 현 쓰시마 시청 인근 하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이 한 것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일생을 보낸 대마도주들의 무덤은 크게 조성된 반면 임진왜란 당시 선봉장으로 나섰던 소오 요시토시의 무덤이 가장 작다.


◆조선통신사 유적

조선통신사 일행은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나면 세이잔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본토로의 여정을 계획했다.

9세기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세이잔지는 이즈하라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찰이 외교창구겸 숙소로 활용된 것은 조선통신사가 본격적으로 방문하면서 부터다.

지금도 세이잔지는 유스호스텔로 활용돼 과거 통신사 일행이 머물렀던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대마도에는 조선통신사 일행을 환영하고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유적들이 존재한다.

쓰시마 시청 교류센터 뒤편 작은 비탈길 위로 올라가면 고려문이 서있다.

대마도 번주가 살던 '사지키바라' 성의 제3문이었으나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 만들었다.

조선과의 선린외교를 위한 영빈문으로 사용했으며, 조선 후기 한일간 조선통신사의 친선교류에 공로가 컸던 일본의 유학자 아메노모리호슈가 주창한 외교원칙 '성신지교린'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고려문을 지나 대마도 이즈하라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 앞에는 조선통신사의 방문을 기념하는 조선통신사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통신사비 옆에는 조선통신사의 역사에 대한 설명비문과 헌화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조선통신사비를 지나 나가사키 현립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는 다양한 역사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1977년 설립된 민속자료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조선통신사 행렬을 묘사한 16.58m 길이의 두루마리 그림이다.

이 밖에도 고려판 대장경·대반야경과 고려청자, 한반도에서 전래된 융기문·무문 토기, 팔찌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자료관 관계자는 "조선통신사의 방문은 임진왜란으로 뒤틀린 조·일 관계를 개선하는 뜻깊은 행사였다"며 "행사 준비만으로도 몇 년이나 걸릴 정도로 중요했다"고 밝혔다.

또한 "대마도의 문화와 역사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현목기자 hmkim@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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