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분쟁 해결과 대마도반환 자료수집운동(http://cafe.daum.net/tongmun 민족사랑)
http://www.tokdolove.com/5_possession1.html(독도사랑 동호회)
http://hssmen.com.ne.kr/4-4-2.htm (독도분쟁)
http://www.koreanhistory.pe.kr/chosun2.htm (조선 연대표)
http://tokdolove.com/5_possession1.html(일본의 독도연구)
-조선 시대의 독도-
태종7년(1407)에 \"대마도수호 종정무가 동해 중 무릉도(울릉도)에 저들의 마을을 옳겨 살게해 달라고 간청함에 조의를 거쳐 거절\"(태종실록)을 계기로 울릉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때 울릉도 옆의 작은섬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태종실록) 세종7년(1425년)에 울릉도를 공도화하기위해 김인우를 파견했을때 관직명이 \'우산.무릉등처안무사\'이었음을 볼때 공도정책의 대상으로 우산도(독도)를 포함시켰음을 알수 있습니다.
공도 정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의 기록 \"우산과 무릉 이 두섬이 울진현 정동의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이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를 통해 독도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종26년(1531)에 출간된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이 책에 덧붙여진 팔도총도(우리나라에서 인쇄본으로 간행한 가장 오래된 조선전도 우산도(독도)가 울릉도의 안쪽에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 문헌상의 기록속에 흐려질때 쯤 우산도(독도)가 다시 새롭게 재기된것이 17세기말 일본과의 최초의 영유권 분쟁때였습니다. 조선 숙종때 2차례에 걸친 일본 본토내에서의 안용복의 활약으로 울릉도,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일본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문서를 보내옴으로서 일단락 되었는데, 이러한 일 발생한 후 1868년 메이지 정권이 들어설때까지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막부세력은 1854년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기 시작하여 외국열강과 수교를 맺어나갔지만 이러한 개항의 과정이 왕의 허락없이 진행되자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반막부세력에 반발에 결국 1868년 막부체계는 붕괴되고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신생 메이지 정부는 일본을 중앙집권체계로 전환하는 한편 막부 말기의 양산된 무사들을 처리하기 위해 조선에 대해 \'정한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긴장관계를 형성함으로서 외환을 통해 내환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를 세워나갔습니다.
1876년에 \'한일수호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일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울릉도에 들어와 고기잡이와 나무를 베어 갔습니다.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영토임을 인정\'하는 특별한 결정을 하였다고 합니다. 1876년에 일본 내무성은 일본 전국의 지적을 조사하고 지도를 편제하기 위해 각현에 조사를 지시했는데요, 이때 시네마현은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츠시마(독도)를 그들의 현에 포함시킬것인가 아닐것인가에 대해 내무성에 질문하였는데 이에 내무성은 17세기말의 조선과의 관계서류를 검토한 후, \"일본은 관계가 없다\"라고 잠정결정을 내린뒤 태정관(총리대신)에게 최종확인을 부탁하였습니다. 이때 태정관은 \"죽도(울릉도)외 1도는 우리나라와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 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던 일본은 제국주의적 만행을 저지르며 왜곡된 영토인식을 심화시켜 나가게 되는데 이러한 시기에 조선조정은 1881년 울릉도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과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일본에 항의하는한편, 이규원을 울릉도 감찰사로 임명하여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였으며, 공도정책을 폐지하고 1883년 4월에 54명을 울릉도에 들여 보냈습니다.
조선조정이 울릉도 일대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들을 펼쳤지만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의 경제,정치 침탈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조선의 현실에 편승해 일본사람들의 불법침입과 산림벌체는 날로 더해갔습니다. 1899년 10월의 울릉도 조사단의 조사를 바탕으로 일본인의 불법 침입과 산림도벌의 심각함을 깨달은 조정은 1900년 10월에[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을 공포하여 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석도를 관할할 사부분이다.여기에서 석도는 독도를 얘기하며, 죽도는 울릉도 바로 옆의 죽서도를 의미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8/nd2001080560.html (이승만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
1859년 3월31일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으로 개항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유도에 의해 국내 정세가 크게 변했다. 이에 따라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도 일변하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마도가 대행하고 있던 조선과의 외교와 무역을 직접 관장하려 했다. 1868년 1월3일 도쿠가와 막부의 조번체제(朝藩體制)가 붕괴하고 왕정복고·왕위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정변이 일어났다.
이로써 웅번(雄藩)들은 판권봉환(版權奉還·왕정으로 복귀함에 따라 각번의 영주들의 영역권을 천황에게 바치는 것)에 들어가, 도쿠가와 막부의 제15대 장군인 도쿠가와 시게노부(德川慶喜, 1837~1913년)도 정권을 개혁 조정에 반환하게 되었다. 1871년 8월29일에는 폐번치현(廢藩置縣·막부 시절의 번을 없애고 근대적 지방 행정기관인 현을 두는 것)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외번부용(外藩附庸)의 대마도주 종의달(宗義達, 1847~1902)도 대마도를 판적봉환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종의달은 조신(朝臣)과 근위소장(近衛小將)이라 칭하고 이스하라(嚴原) 번지사(藩知事)가 되었다. 그러나 1877년 대마도는 나가사키현에 편입되면서, 현에 속한 지방 행정지로 격하되었다.
고려 공민왕 17년(1368) 대마도주가 고려의 만호 벼슬을 가진 사신(使臣)으로 파견된 이래 대마도는 600여 년간 조선과 대국휼소국(大國恤小國) 또는 조공회사(朝貢回賜)의 관계를 맺어온 속방(屬邦)이었다. 그러다 일본 신제국주의의 마수에 걸려 일본에 귀속되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1863년 12월13일 즉위한 고종을 대신해 대원군이 섭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1865년부터 조선은 임진왜란 때 타버린 경복궁을 중수하는 데 진력하였다. 그 전해인 1864년 4월22일에는 전국 서원의 향현사(鄕賢祠·향교와 사당)를 철폐하고, 척사 조치를 내리는 등 쇄국봉건체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와중인 1868년 12월19일, 일본 정부는 일본이 왕정체제로 복귀해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조선에 통고하였다. 이에 대해 조선 조정은 서계(書契·조선과 일본을 왕래하던 문서) 문구가 불손하다며 접수를 거절하였다. 그러다 1875년 8월20일 강화도에서 운양호사건이 발발하고 이듬해인 1876년 2월2일 조선은 일본과 치욕적인 병자수호조약(丙子修護條約)을 체결하였다.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 후 임오군란→갑신정변→청일전쟁→명성황후 시해→노일전쟁→을사늑결(을사보호조약)→경술병탄(한일합방)→3·1 독립선언→1945년 8월15일 광복으로 숨가쁜 현대사가 이어진다. 이런 현대사 속에 우리는 대마도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광복 후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초대 부산수산대학장을 역임한 정문기(鄭文基, 1898~1996) 박사다. 정박사는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평화의 영속성’이라는 논문에서 대마도를 조선으로 환속하는 것이 동양평화의 영속성을 기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미 군정 시기인 1948년 2월17일에 열린 제204차 입법의원 본회의에서 입법의원 허간용(許侃龍·서북도 관선의원) 외 62명은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복귀시킬 것을 대일강화조약에 넣자는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 폭주로 연기되다 회기가 종결됨으로써 실현을 보지 못했다.
-대마도 반환 불씨 지펴야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18일 전격적으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발표하였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 이하 온 내각이 발칵 뒤집히며 반발하였다. 그런데도 이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9월9일 재차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며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1949년 1월6일 일본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 이대통령은 이틀 후인 1월8일, 대일강화회의 참가계획을 발표하면서 또 한 번 대마도 반환을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앞으로 열릴 대일강화회의에서 대마도 반환을 관철시킬 것을 촉구하는 건의안이 제출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요시다 총리는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이대통령의 요구를 막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이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전후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데 방해되는 언사로 받아들이고 이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했다. 그 후 이대통령은 공식적으로나 문서상으로는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교사절을 만날 때마다 대마도 영유권을 역설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는 역사적인 근거를 깔고 있는 올바른 발언이었다.
대마도는 치욕의 역사 속에서도 대의를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항거한 면암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혼이 깃들인 섬이다. 올해 4월 부산 부경대학교(구 부산수산대) 강남주 총장은 대마도에서 입시설명회를 갖고 “대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150km쯤 떨어져 있는 일본보다는 53km 만 떨어져 있는 한국을 더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정서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강총장이 대마도에서 입시 설명회를 갖고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깊이 음미해볼 만한 일이다.
구한말 국제정세에 우둔했던 우리는 쇄국정책을 선택해, 대마도가 일본의 억압 속에 일본 영토로 귀속된 사실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당당히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을 따져볼 때다.
http://user.chollian.net/%7Etnsl/html/d29.htm 이종무 - 대마도정벌
http://home.hanmir.com/~jtbpusan/tsushima.htm (대마도 관광정보)
http://www.ajutour.com/dae_fish/daemado_1.html (대마도 유적지)
http://my.netian.com/~dblue1/f-1.html (대마도)
http://kr.encycl.yahoo.com/final.html?id=702360 최익현(崔益鉉) 대마도일기 對馬島日記
http://www.niast.go.kr/bandi/society/research14.htm 대마도탐사내용
http://dong90909.mytripod.co.kr/js1.htm 대마도정벌
https://tsushima-busan.or.kr 대마도 부산사무소
<일본재외공관〉
재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http://www.kr.emb-japan.go.jp)
재부산일본국총영사관 (http://www.japanbusan.or.kr)
재제주일본국총영사관 (http://www.jeju.kr.emb-japan.go.jp)
〈주한 일본 관련 기관〉
일본무역진흥회 서울센터 (http://www.jetro.or.kr)
일본 지방자치단체 국제화협회 서울사무소(http://www.clair.or.kr)
일본국제관광진흥회 서울사무소 (http://www.jnto.go.jp/kor)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http://www.jpf.or.kr)
키타토호쿠 3현·홋카이도 합동 서울사무소 (http://www.kitatohoku3ken-hokkaido.or.kr)
미야기현 서울사무소 (http://www.miyagi.or.kr)
니이가타현 서울사무소 (http://www.niigata.or.kr)
후쿠오카현 서울사무소 (http://www.jetro.or.kr/fuku)
〈관련단체〉
조선통신사문화사업추진위원회 (http://www.joseontongsinsa.org)
(사)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 (http://www.festival.busan.kr)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 (http://www.kojac.or.kr)
〈해운/여행회사〉
(주)대아고속해운 (http://www.daea.com)
(주)범주항공여행사 (http://www.bumju.com)
(주)열린투어 (http://www.opentours.co.kr)
일본투어 (http://www.bq--3czqbooiwpca.mltbd.com)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http://busanferry.co.kr)
http://www.jpf.or.kr/index.jsp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타)
http://www.jpf.go.jp/jkxx/k_index.html (일한교류센타)
http://www.japanstudy.org/html/dojou.htm (한일사회문화포럼)
http://www.jpf.go.jp (국제교류기금)
http://www.jpf.or.kr/center_programs/filmcollection_01_intro.jsp (일본필름콜렉션)
http://www.jpf.or.kr/center_programs/nihongo_01.jsp (일본어교육)
http://www.my-concierge.org/kyushu/index_kr.htm (규슈 안내싸이트)
http://www.japanstudy.org/html/jculture.htm (일본대중문화 추천싸이트) |